2009년 09월 24일
꿀벅지 그리고 김여사.
# by | 2009/09/24 04:32 | 트랙백 | 덧글(3)
# by | 2009/09/24 04:32 | 트랙백 | 덧글(3)

# by | 2009/08/18 00:51 | 트랙백 | 덧글(0)
휴가를 내어 광화문으로 나섰어.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간다는게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갈 수 밖에 없었어. 돌아오는 길이 걱정되었지. 행여 마음속 구멍이 더 크게 뚫리지나 않을까하는 마음이었어.
광화문 너머에서는 영결식이 이루어지고, 전광판에는 화면이 나왔어. 그렇지만, 스피커는 없었다. 어디선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비현실적인 울림 빼고는.

저 시각 오전 11시 54분. 전경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어. 그 넓은 광화문 거리는, 지하 광장 공사로 뜯어놓고, 그나마 진입하지 못하도록 폴리스 라인을 쳐두고는, 전경들이 인도로 밀려와.

시민들과 말다툼이 붙었어. '남의 장례식에서 무슨 행패냐' 저 너른 도로를 놔두고 인도로 병력이동한다는게 이해가 안되었어. 저 애들은 벌써 제대로 장비를 갖췄어. 뭔가 몰라도 한참을 모른다고 봐. 우리들이 지금 싸우러 왔는지, 슬퍼하러 왔는지.













그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도 영구차가 주는 그 압박감에 현실이 되어버려.



이 때 쯤 폴리스라인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나도 모르는 새 그들과 같이 광화문 거리를 내디뎠어. 언제 다시 이 길을 걷게 될까. 수 년이 걸릴까. 수 십 년이 걸릴까.
핍박받다 돌아가신 이순신 장군과, 멀리 보이는 핍박 전문 정론지 사이로 영구 행렬이 지나갔어.









오늘 정말 많은 흐느낌을 들었다. 정말 많은 이들의 '사랑합니다' 외침을 들었다.




노신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길이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니다보니 길이 되었다고.




# by | 2009/05/30 00:13 | 트랙백 | 덧글(3)
난 후속 기사가 터질 때 마다 미치겠다.
우리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위에서 몸을 날릴 때...
그에게 최소 세 번의 충돌이 있었던 것이다.
"고추밭에서 일하던 중 '툭' '탁' '쿵'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60이 넘은 그의 몸이,
수직 낙하가 아니라, 70도 바위 위로 충돌하며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던 것이다.
그 거친 바위 위에 부딪쳐 그 소리들이 울렸던 것이다.
6시 10분에서 20분 사이에 몸을 날려...
9시 40분 절명하시기까지...
자그마치 3시간 30분...
제발 고통을 느끼지 않으셨기를.
코마 상태에서 고통 따위는 없으셨기를.
마음을 짖누르는 그 고통의 무게에 음모론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는 밤이다.
# by | 2009/05/28 00:51 | 트랙백 | 덧글(0)
퇴근길 발길이 향했습니다. 원래는 시청앞 시민 추모제를 가려고 나선 길이었는데, 퇴근 무렵 뉴스를 보니 여전히 빗장을 걸었더군요. 자연스레 발길은 서울역을 향했습니다. 사당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던 참이었는데 지하철이 10여분을 서 있습니다. 흐릿하게 들리는 방송을 귀담아 들어보니, 총신대역에서 사망사고가 있은 모양입니다.
"사망사고로 인하여 정차중이오니 급하신 승객께서는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Record_2009_05_27_20_29_36.mp3
아, 두가지에 놀랐습니다. 하나는 직설적으로 '사망'이라는 단어를 골라낸 무심한 방송과, 그 무심함에도 표정변화없는 승객들에게 놀랐습니다. 이제 일상이 되었나 봅니다. (돌아와 뉴스를 확인하니 다행히 추락자는 사망하지 않았더군요. )
그렇게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원래 카메라를 꺼내들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한동안 줄을 서다 보니 오늘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줄 서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새치기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줄 설 곳을 피해다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줄 끝을 찾으러 가는 길이 아득합니다. 줄을 선 후 뒤를 돌아보니 3~4분이 흐른 것 같은데 제 뒤에 수 백 명이 서 있습니다. 저처럼 회사일 마치고 나선 듯한 직장인 분위기입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앞사람 뒤통수가 아닌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위는 침묵합니다.
이렇게 긴 청중이 한참 기다리고 있으면 노무현이 보이던 행동이 있었어요. 조금은 미안한 표정으로, 조금은 벅찬 표정으로 싱거운 농담 한마디 던지셨을 텐데. 그러면 항상 우리는 하하하 웃을 수 밖에 없었는데.

정부가 만든 역사박물관 분향소가 아닌 시민 분향소지만 알차게 잘 꾸몄습니다. 10시 정각 사람들은 줄의 끝은 여전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상주를 마주하는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문짝. 얼마 전 무릎팍도사에서 봤던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그 문성근씨가 아닙니다. 며칠 새 초로의 노인처럼 힘들어 보였습니다. 여러 말들이 목구멍에 얼어붙었습니다. 역시 상주로 있던 이창동 전 장관. 그 시절에는 문화관광부가 지금과 같은 역할을 하게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강금실 전 장관도 많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집에 오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지하철에서 붙인 찌라시를 바라보니 누가 낙서를 해놨습니다.
"최선의 길은 과도하게 높은 임금을 삭감하는 것입니다! 근무시간 연장을 통한 인원감축과 임금삭감 대환영!"
비꼬는 소리일까,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일까 갸웃거리며 집으로 왔습니다.
다녀오니,
마음이 더 아픕니다...
줄 서 있는 동안, 봉하행 KTX를 타고 싶다는 생각 가득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 by | 2009/05/28 00:09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