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능력 좀! 보여 주어요.

전문가의 능력을 우습게 보는 네티즌을 향한 글이 어제 오늘 이오공감에 떠 있다. 
참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든다.

2010년, 5월. 세상은 고도로 전문화되어, 전문적이지 않은 영역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나 정부를 둘러싼 거의 모든 일을 하려면, 해당 영역의 전문가여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이 통치하는 나라라는 말이다.
전문가들을 무시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하는 모든 일에 입도 뻥긋해서는 안되는 복잡한 나라라는 이야기다.

사대강. 전문가들이 용역비를 들여 오랜 기간 연구한  일 아니던가. 
하천에 관한 자격증 하나 없으면 말을 꺼내면 안될 일이다.

세종시. 행정에 관해 공부해 본 일이 있는가. 
행정 전문가들이 하는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의료 민영화. 
혹시 의료 민영화 추진하는 사람들이 의료행정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전문가가 아니면 아무 말도 말아야 한다.

이런 식의 논리. 정말 민망하지 않은가.
전문가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거. 도킨스에게 민망한 일이다.

전문가들이 하는 일에 비전문가가 개입하는 거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전문가라면 말이다. 아마추어가 꺼내는 우스운 논리 가볍게 제압하는 거. 그것도 당연한 일이다.

전문가들이라면 말이다. 전문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야 한다.

1번이라는 수기 글에 대한 의문. 
대중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실험 데이터로 설명해주면 될 일이다.
해당 어뢰의 온도는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고, 해수에 의한 마찰은 어떻고. 
안료 성분은 어떠하니 어느 회사 제품이다. 그래서 대중들이 갖는 이견은 잘못되었다.  

이런 것을 원한단 말이다.

스크류 역방향 구겨짐.
마찬가지로 실험에 의해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을 일이다. 
스크류 재질은 무엇인데, 어느정도의 힘이 가해지면 이렇게 휜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이렇게 재현된다.  그래서 대중들이 갖는 이견은 잘못되었다.

이런 거 말이다. 

TOD영상에서 폭발후 열이 감지되지 않았던 것.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수분내 어뢰 피격 열이 모두 사라지고, 그리고 원거리 TOD기기에서의 정확성은 무리가 있다는 것.
그래서 대중들이 갖는 이견은 잘못되었다.

이런 거 말이다.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해서 의문을 깔끔하게 해결해 주길 바란단 말이다.

음모론이라는 말을 참 쉽게 입에 담는다.
전문가들의 생각과 다르면 음모론이 된다는 거 이거 좀 싫다.
뭐가 음모론일까.
지금 시점에서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는데도, 부정하는 허술한 선동 정도가 음모론이 아닐까.
그런데 아직은 입증안된 사례들에 대한 언급을 음모론이라 몰아 붙이는 것.
그거 과학적인 자세인지 모르겠다.

음. 

과학 전문가가 나서기보단, 
기호학자가 나와야 할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by 분도 | 2010/05/25 10:52 | 트랙백 | 덧글(7)

단일화 상념.

천상천하 유야독존? (天上天下 有野獨尊?)

사람을 들었다 놨다하는 글 실력을 가진 산하님의 블로그와 그 댓글들을 읽다 생각에 잠긴다.
평소에 산하님 글들을 좋아하는 것 만큼 상념에 빠질 수 밖에.

이의제기한 대로 범야권 단일후보라는 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야3당 단일후보 정도로 고쳐야 옳다.
그러나 진보신당의 입장이 비치는 부분들은 공감하기 어렵다.
한총리의 정견이 아닌, 토론 실력에 대한 부분들은 더욱 그렇다.

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진보신당에 대한 까칠한 시선을 적는 글이 되겠다.

한명숙을 지지하지만, 범야권 단일후보라는 말이 거슬렸던 것에 이유를 떠올려 본다.
노회찬-심상정이 수도권 유일한 진보후보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나 오만한가.

유시민,한명숙이 진보신당의 입장에선 진보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일화 과정에서 민노당과 정책연대하고, 당연히 민노당의 정책도 시정에 포함하게 될 터인데,
그 모두를 진보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도 황당하다.
진보 기득권이라는 표현, 그리 탐탁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에는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범야권 단일후보와 유일 진보후보라는 말 각각에는 헤게모니 다툼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지율을 기반으로 진보신당의 지지율이 낮다고 제외해버린 것은 폭력적이다.
진보라는 말을 독점하고 싶은 오만도 폭력이다.

나는 그 두 지점 사이 서 있는 의견들이 보고 싶다. 
그러나, 
후보들의 의견보다 지지자들의 의견은 훨씬 예리한 각이 서 있다.
진보신당 지지율 3%라 무시하느냐는 댓글은 어이가 없다. 
5월18일자 리얼미터 조사에서 진보신당 지지율은 1.0%다. 신뢰수준 ± 1.4%p인 조사다. 
지지율을 구태여 3배나 과장할 필요가 있나 싶다. 이거 단일화 압박 때문에 내려간 지지도가 아니다.
2008년 이후 진보신당이 3%로 올라간 적이 얼마나 있었나.
참여정부가 낮은 지지율로 정권을 넘겨 줬던 것을 반성하라는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낮은 지지율로 당의 존립 위기가 된 상황을 반성하고 있을까?
선거 때까지 시한부 당이 된 이 상황은 외부에서만 날아 왔을까?
분당사태 이후, 민노당이 가졌던 내부 개혁의지를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얼마나 갖고 있을까.
그 사이 민노당이 변했던 것 만큼 진보신당은 변했을까? 
혹은, 이번 위기 이후 창당해서 새로 생길 정당은 그런 포텐셜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그런 희망이 보이면, 단일화가 되든 말든, 
서울시장 득표가 어떻게 나오든 진보신당에도 따뜻한 시선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해서 문제다. 
단일화 무산으로 벌어지는 책임론을 벗어나기 위한 진흙탕에서 후보들에게 때를 묻히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일화 요구가 소수에 대한 폭력인가? 반MB연대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묻지마 단일화인가.

일년 전, 시사인의 기사 하나를 꺼내본다.

2009.06.09
노회찬 대표가 기대해볼 만했던 그림은, 노 대표의 인물 경쟁력을 앞세워 선거 직전까지 오세훈 시장에 이은 2위 자리를 수성한 후, ‘반MB 연대’를 명분으로 민주당 후보와 막판 단일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도 노 대표는 오세훈 시장·추미애 의원과의 3자 대결에서 25.7%의 지지를 얻어, 기존 민주당 인물을 상대로는 만만찮은 경쟁력을 보여줬다. 노 대표가 ‘반MB 단일화’의 구심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유력 후보군이 떠오르면서 노 대표의 구상 역시 크게 헝클어졌다.

애초부터, 노회찬 대표가 그렸던 그림은 자력으로 당선되기 어려우니, 반MB 연대를 명분으로 민주당 후보와 막판 단일화하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진보신당의 입장이 왜곡된 걸까? 이 기사는 진보신당 대변인실의 뉴스 클리핑에 올라와 있다.

http://www1.newjinbo.org/xe/?mid=bd_news_clipping&page=12&sort_index=readed_count&order_type=desc&document_srl=41331

말하자면, 노대표의 구상이라는 것, 진보신당 대변인실이 인정했다는 뜻일거다. 

노회찬씨의 지지율이 높았으면 정치적 신념도 지금과는 조금 달랐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유불리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걸 신념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한 걸음 떨어져서 진보신당을 보는 시선엔 지지자들과 이 정도의 갭이 있다는 것 받아 들여야 한다.
한총리를 공격하는 매서운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댓글에 아연해하고 있다는 것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009년 11월. 
앞서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뷰'가 지난 20일 벌인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3%포인트)결과도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이 33.3%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민주당 소속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9.0%가 오차범위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특히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15.5%로 야권후보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손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불과 반년 전.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총리는 30%가량의 지지율. 
그런데 노회찬 후보를 지지했던 15.5%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또 그 표들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by 분도 | 2010/05/22 08:29 | 트랙백 | 덧글(1)

애플을 둘러싼 이글루 키워.

작년이던가 집 근처 초라한 돈가스집 단골이 되었다. 이글루에 글을 적진 않고, 서브 컬쳐 조사차 가끔 눈팅이나 할 때였다.. 주말마다 들러 냠냠 맛있게 먹곤 했다. 두달 지나, 아직 사업자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의 지하실형 돈가스집이 이글루에서 화제가 되었다. 자리가 꽉차, 때때로 허탕을 치기도 했다. 이때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돈가스 집이 워낙 좁고, 지하실이다보니 옆자리 대화가 귀를 콕콕 찌른다. 화제가 독특했다. 어느 닉네임을 열심히 씹고 있다. 이글루를 안쓰는 친구와의 식탁인지라, 혼자 클클 웃으며 밥을 먹었다. 그런데, 매주 다른 사람들이 다른 닉네임을 씹는 것 아닌가. 한달가량이었지만, 신기한 경험이었다. 당시에는 비판적인 생각보다는, 낯선 이국땅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닉네임으로 호칭을 대신하는 건, 회사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다. 한 10년 전부터 닉네임으로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식당에서 인터넷상의 누군가를 안주로 삼는 것은 낯설다. 


며칠 전 문득 깨달았다. 아. 그게 이글루의 문화구나. 작년에 나는 문화충격을 받은 것이었구나. 누군가를 비틀고, 뒤집어 신랄하게 까는 것은 이글루의 주요 스포츠다. 야구, 축구, 피겨보다 더 인기종목이다. 라커룸의 선수들처럼 까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불똥이 살짝 튀면 언제라도 총알같이 나가 사정없이 까고 본다. 한 쪽에서는 불똥을 튀기기 위해 부싯돌을 갈고 있다. 까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들의 역치는 높다. 매일매일 화제를 바꿔가며 단련해왔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보면, 철천지 원수라고 생각할지 모를 정도다만 어떤 이들의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그리고 게임의 룰이 있다. 우리 팀과 상대 팀이 존재하고, 그 중간은 없다. 심판이 없는 데쓰매치인데, 죽는 사람은 일년에 한둘 나오는 안전한 게임이다. 


유행하는 애플빠와 애플까를 보자. 이글루 게임을 보기 전의 내 생각은 이랬다. 


애플빠.

애플을 10년이상 쓴 사람들은 윈도우보다 불편할 때부터 감안하고 구입했다. 현실을 초월한 측면이 있으니 설득할래야 설득이 안된다.

(로컬라이징 문제도 심각했고, 엘렉스 시절부터 비싼가격과 형편없는 AS는 유명했다.)


애플까. 

이통사와 제조사에선 타겟층도 겹치니 블로그 마케팅 한참 신경썼고, 블로그엔 특정 제품의 흥보요원들이 매우 많다. 

아이폰 비판 포스팅중에는 월급받는 사람들의 글이 많을 것이다.


난 이 두 그룹의 아웅다웅으로 생각했다. 저럴 경우엔 논쟁이 절대 커지지 않는다. 전자는 옴니아 흥보요원으로 자기 이름 팔아먹은 사람들처럼, 돈받고 하는 일이니 욕 안들을 정도로만 살짝 잽만 날리고 이미지 관리를 한다. 그래야 다음 건수가 들어올 것 아닌가. 후자는 뭐랄까, 그래 도도하다. 훨씬 큰 불편과 야유를 겪어봤기 때문에 초연한 것이다. OS9 시절엔 야유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XP시절로 들어오면서, 윈도우 계열은 일취월장했고, 상대적으로 애플 제품의 퀄리티는 갈수록 나빠졌다. 지금은 겉만 번드르르하지 싸구려 부품으로 단가 절약한게 팍팍 티가 나는 것이다. 


그랬는데, 며칠 전 빠와 까의 글을 하나씩 읽다보니,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글루의 까는 알바생이 아니다. 이글루의 빠는 애플을 몇 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선수들은 잊혀지기 전에 볼을 한 번씩 차야한다. 그리고 진영은 확실히 갈라야 한다.


애플빠.

애플 제품을 종교적으로 광신하며, 다른 제품은 싸잡아 비하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사람들 보기 어렵던데, 어디서 봤는지 궁금하다. 애플 커뮤니티에선 애플 제품의 불편함과 활용법들, 때때로 신제품에 대한 기대들만 나눌 뿐이다. 구태여 윈도우가 맥보다 나빠요라는 소리할 이유가 없다.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글루 키워의 특성상 설정한 가상의 몹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애플까.

전자를 까는 사람들. 옴니아 흥보 직원들보다 더 열과 성을 다한다. 이 걸로 책 한 권 낼 분량 적은 유저들도 몇몇 보인다. 그래프도 동원되며, 당연히 신랄하다. 상대를 광신도라며 비판하며 돌맹이와 아이폰을 비교한 표를 좋아한다. 이 비판이 제갈량 쌈싸먹듯 정교해도 부질없다. 왜냐하면 실체가 없는 집단을 향한 공허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애플 제품이 좋다고 글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대개 5분 전에 아이폰 개통한 사람들이다. 자랑할 정열이 있고, 시간도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애플빠인가.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광신도가 되려면 몇 달은 지나야하지 않을까. 아이폰 국내 출시된 것도 이제 막 두달이 지났다.


이글루에서 설정한 것말고, 현실의 애플빠 스펙트럼을 따져보면 대충 이렇지 않을까.


1. 스티브 잡스 사랑해요. 5%

2. 애플 제품이면 꼬박꼬박 사는 사람. 10%

3. 애플 제품에 애증이 있는 사람. 15%

4. 아이폰으로 애플을 접한 사람.  20% 

5. 주변에서 아이폰 좋다니까 구입한 사람. 비싼 돈주고 샀는데 까니까 기분나빠. 50%


내 주변에는 거진 3번인데, 댓글달만한 여유는 없는 사람들이다. 저 중에서 광신도라고 할만한 사람은 1번. 그런데, 그네들이 인터넷에 옹호글을 쓸까? 윈도우 유저에게 애플 논쟁은 낯선 것일 수도 있겠는데, 맥유저에게는 10년 전부터 연중행사로 있어온 일이다. 했던 소리 또 하면 지겹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이글루 키워의 룰은 1~5까지, 그리고 논쟁에 관심없는 말없는 그룹까지 광역으로 깐다. 게임의 룰을 모르는 사람들은 말려들기 십상이다.


이글루 키워에도 장점이 존재한다. 재밌다. 남 뒷담화처럼 재미있는 일이 또 있으랴. 이글루의 파워블로거들중에는 수시아님처럼 까기로 전문적인 영역을 갖춘 분들이 있다. 망콘콘의 글들도 재미있었다. 글 내용보다 다양한 매체로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하지만 단점은 치명적이다. 먼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역사글을 쓰는 어떤 블로거는 좀 안타깝다. 그분이 말하는 바는 모두 공감하는데, 이글루방식으로 경계가 확연한 것이 부담스럽다. 그 글에 반대하는 이가 읽으면, 바른 정보보다 조롱만이 뇌리에 남을 것이다. 긍정적인 방향이었으면 성과가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았을 텐데. 들인 공이 보이기에 안타깝다.


다음은 더 심각한 문제인데, 비판할 일도 비판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불똥이 튀면 바로 게임의 룰을 적용하다보니, 중간은 없다. 막장행 급행열차를 타는 것이다. 적당한 비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미지 관리를 하게 된다.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조차, 흠흠 헛기침만하고 펜을 내려놓는다.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으론,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키워의 질이 낮아지는 것이다. 상대를 향해서도 상투적인 표현만을 쓰게 되고, 결과가 빤히 보인다.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참여하다보니  금새 식상해진다. 재미가 없다. 재미있자고 하는 키워질인데, 재미가 없다. 


문득, 아침 시간, 잠 깬다고 잠깐 컴퓨터앞에 앉았다, 쓰잘 데 없는 낙서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by 분도 | 2010/02/13 10:22 | 트랙백 | 덧글(19)

애플빠? 흠... 원한다면 되어준다.

어느 애플빠와의 대화 그 후기 Session 2.

몇 년 전 오디오북을 열심히 들은 적이 있다. 대개가 MS-DRM이나 NET-SYNC같은 DRM으로 보호되어 있다. 내가 쓰던 MP3는 MS-DRM을 써야 했다. MP3파일을 구입해 본적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MS-DRM은 MS Media player 그것도 어느 수준 이상의 버전에서 DRM을 풀고 재생할 수 있다. 무슨 이야기냐면 내가 내 돈주고 구입한 음악을 들으려면, 윈도우를 깔고 MS Media player를 업데이트하란 이야기다. 대안? 대안은 없다. 윈도우 계열을 무슨 대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것처럼 묘사한 분도 있지만. 대안이 없기에 구입해서 지금껏 못들은 음반도 있다. (애플도 물론 DRM이 있다. Fair play.) 


무슨 말을 하고 싶냐하면, 대안이 있는 기기와 대안이 없는 기기로 편가르기를 하는 게 너무 생뚱맞다는 거다. 윈도우가 개방적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건드릴 수 있다? 커널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빙빙 돌아간 프로젝트들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내가 프로그래머가 아니기에 같이 일하는 프로그래머들이 구라친 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 설득력있는 좋은 핑계거리 아니겠는가. 그 내용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속살을 감춘 MS가 MSDN에 온갖 설명을 방대하게 하기 시작한 것 아닌가. 정말 윈도즈가 개방적이라 생각하는가. 애플 목줄이 채워진 걸 모르고 있다고 빈정거리는데, 애플 사용자들은 애플에 얼마나 종속적인지 잘 알고 있다. 최소한 개방적이라고는 생각안한단 말이지. 


그리고 하드웨어. 드라이버 지원을 안해서 못쓰는 기기들. 그런 기기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회사들이 맥용 드라이버를 공급한다. 왠만한 USB기기중 맥용으로 쓰지 못하는 거 별로 없다. 국내에 맥기기들의 비중이 그렇게 작지만, 맥지원기기들은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하드웨어 드라이버는 하드웨어 제작사가 지원해줘야하는 거 아니던가? 이게 왜 애플의 폐쇄성 문제와 결부되는지 모르겠다. 


아이팟 싱크. 아이튠즈로만 할 수 있을까? 아니다. 하물며 맥에서도 iTunes외에 아이팟에 싱크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 대안들이 수두룩하다는 거다. 게다가 써드파티 프로그램들은 다 각자의 방식으로 싱크를 한다. 나는 iBank, Voodoopad, Omnifocus 이 세 프로그램을 맥과 싱크한다. 각각 가계부, 데스크탑 위키, 일정관리 프로그램이다. 그런 것을 싱크하면서, 내 스마트폰을 회사에서 싱크시킬 때를 떠올려본다. 액티브 싱크, 그리고 모바일 디바이스 센터라는 프로그램만을 써야 한다. 프로그램의 크기치고는 너무나 더딘 싱크 타임으로 사람을 깜짝 놀래키는 대단한 프로그램들이다. 웃긴 것은 이 프로그램의 맥버전은 없다. 미싱싱크라는 써드파티 프로그램을 구입해야 한다. 액티브싱크는 MS의 사유 프로토콜이며 MS의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하는 놈이다. 내 주변에 모바일 디바이스 센터외에 다른 대안을 써서 싱크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iTunes가 불편할 수도 있다. 난 MS에 대한 호불호도 없는데, 윈도우 기반의 특정 프로그램은 매우 싫어하고 또 어떤 프로그램은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애플 딱지 붙은 모든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글을 읽어보면 iTunes가 싫기 때문에 애플의 모든 프로그램이 싫다는 뉘앙스다. 이런 사고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싫기 때문에 싫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iTunes방식의 파일정리 난감할 수도 있다. 아이리버의 파일매니저나 멜론이 더 편한지는 잘 모르겠다. 윈도우 탐색기로 관리하는게 더 편하고, 플레이리스트 만들어 관리하는게 더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 10년 MP3를 써왔기에 하드 디스크에 담긴 MP3가 5천곡이 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지금 듣고 있는 곡이 마음에 들어, Genius로 비슷한 취향의 음악만 듣고 싶다거나, 내가 가장 많이 재생한 음악만 듣고 싶다거나 할 때, 윈도우 탐색기로 그 과정을 얼마나 쉽게 구성할 수 있을까. 최소한 버튼하나 눌러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프로그램 컨셉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단순한 음악 관리와 다채로운 음악 재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가 편하면 하나는 어렵게 된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쉽게 듣게 만들어주고 관리까지 쉬운 mp3가 있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당연히 쥰에도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 플레이어를 써서 싱크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개발자로서 애플을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종속된 개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파릇파릇한 조카가 독립 개발자가 되겠다고 할 때 박수 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프로그래머의 야근과 고단함, 생계불안과 어두운 미래에 대해 충고해줄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어디 한가지 언어만 알면 생계가 보장되던가.  구루수준으로 인정받는 프로그래머와 종종 술을 마신다. 경험과 지식, 실력으로는 어딜가나 인정받을 사람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취직하기 어렵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은 프로그래머가 실무에서 뛰기 힘든 사회다. 최근 2년간 그 아저씨의 수익은 한해 1억은 넘고, 2억은 안된다. 앱스토어 때문이다. 수직적인 외주에서 수평적인 써드파티 활동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MS도 앱스토어같은 생태계를 건설할 기회가 수없이 많았다. 지난 20년동안 MS본사에는 달라의 강이 흘렀다. 하지만 내가 개발사에서 일하며 MS를 접한 것은, 기업형 패키지로 비주얼 스튜디오와 윈도우를 싼 값에 쓸 수 있어 고맙다고 생각되었을 때 뿐이었다. 애플은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꿔놨다. 써드파티와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철학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니겠나. 개발자 워너비 조카에게, 애플의 개가 될 것이라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앱스토어 등록비 10만원과 150만원짜리 맥북 하나 사줄 용의가 있다. 먹고 살아야 개발을 할 수 있고, 기타라도 튕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써브컬쳐 좋아하는 이글루에도 앱스토어 시스템, 소비자-개발자간 직거래 시스템을 통해서 먹고 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iTunes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그걸 감안해줬으면 좋겠다. 복잡한 음악플레이어일 수도 있지만, 컨텐츠 원클릭 구매 프로그램치고는 간결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MS가 SK가 KT가 구글이 그만한 시장을 만들어 준다면 어디에라도 박수칠 수 있다.

by 분도 | 2010/02/01 14:17 | 트랙백 | 덧글(9)

호모라 생각하는 머리와 호모포비아를 적는 손.

페미니스트의 강연 속 폭력.

언젠가 유명한 페미니스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강연도 찾아들을 만큼, 나 나름대로는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건전한 남자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 강연에는 흥미로운 내용도 많았다. 한국어에도 엄연히 남성어와 여성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각하지 못하고 남성어를 쓸 때 그게 또 하나의 폭력이 된다는 그런 내용 참신했다. 그런데 점점 불편해오는 것이다. 감성의 속도가 이성을 못따라와 잔상을 일으킨다. 집에 와 곰곰히 생각해봤다. 불편한 그 덩어리들의 정체는 뭘까. 


내 결론은 그거다. 폭력이라는 단어. 정치적으로 올바르려 애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이런 말도 하나의 폭력이 됩니다라고 할 때 그 폭력. 나도 모르게 생활속에 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말들이 불편했다. 어떤 말들이 있을까. 얼마전 시끌했던 호모라는 말도 그럴 수 있겠다. 차별어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겐 폭력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불편한 말이다. 그 페미니스트의 강연에 의하면 내가 쓰는 말의 반은 폭력이다. 폭력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온다. 모든 말들이 편할 필요는 없겠지. 불편한 진실이 편한 진실보다 더 많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지적보다는 긍정적인 칭찬이 세상을 바꾸기에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책을 읽다 머리에 콕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60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던 전공투는 정말로 폭력을 행사했다. 안전모와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죽창을 들고. 그런데 이네들은 죽창을 게바봉이라 부른다. 섹트사이의 폭력 난투는 우치게바라 부른다. 게바는 독일어 Gewalt에서 나왔다. 재미있다. 기나긴 죽창을 독일어로 명명하다니. 고등학교 교사들이 무시무시한 하키채에다 사랑봉같은 애칭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폭력과 그 폭력의 목적 사이에는 당연히 깊은 단차가 있다. 그 골을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그런 징검다리를 놓지 않았을까. 그런 것들이 없었으면, 극우 미시마 유키오가 동경대 전공투가 점거한 야스다 강당에 단독으로 찾아와 강연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조갑제가 민주노총 파업현장에 나타나 강연하는 꼴이지 않은가.


폭력이라는 날 것을 살짝만 익혀 들고 왔으면, 나는 헷갈리지 않고 재미있게 강연을 들었을 것이다. 폭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강사와 나 사이는 홍해처럼 갈라졌다. 


날 선 정의들

여러 블로그들을 보면, 정의는 확실하다. 여러 모세들이 갈라놓은 홍해가 너무나 많다. 호모라고 말하는 사람과 호모포비아라고 말하는 사람 두 부류만 세상에 존재한다. 한가지 부류가 더 있다. 머리 속 깊은 곳에선 호모라고 말하고, 손가락으로는 호모포비아라고 말하는 나 같은 사람들. 2010년 한국인들이 애매하게 서 있는 지점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위선인 것 같기도 하고, 스노비즘인 것 같기도 하고. 알면서도 못끊는 담배같은 지겨운 습관 같기도 하다. 


뇌성마비 친구와 수영장에서 만난 게이

동호회 모임에 나갔는데, 한 녀석이 중증 뇌성마비다. 모르고 있던 사실은 아니었다만, TV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내가 뇌성마비 장애인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대할지 머리 속이 막막하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고,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어떻게 대해야 하나. 혹여 내가 동정심이나, 귀찮음을 내비치는 건 아닌지 몸이 사려진다. 내 상식하고 내 행동하고 어긋나기 시작한다. 재활원에서 자원봉사한 친구가 만들어 내는 능숙한 분위기가 경이롭다. 돌아오는 길 내내 내가 위선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새벽 수영을 열심히 다니고 있을 때다. 재잘거리며 친해보려던 또래 아저씨. 잠도 덜깨고 물도 먹는데 왜이리 말을 거는지 불편하다. 희한하게 강습 줄을 쓸 때 마다 내 뒤에 서고, 이상하게 샤워할 때 마다 옆에 붙어 샤워를 한다. 샤워실에서 이상하게 내 쪽 샤워기로 한걸음 붙곤 하던 그 아저씨. 어느 날 몸이 닿는 순간, 나는 비누도 덜 씻고, 새벽 추위에 물도 안마른 채로 쌩 도망나왔다. 이후로 비누 주워 달라는 농담이 나올 때 마다 등골이 서늘하다. 며칠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징글징글한 것이었다. 다시 수영장에게 가기까지 2년이 걸렸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런 기분 나쁜 경험담이 툭 튀어 나올 때가 있는데, 학교 선생부터 군대 고참, 버스 옆자리 아저씨까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호모포비아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회식 자리에서 집에 바래다 달라던 여직원이 오바이트한 입으로 입술을 덮쳤던 황망함보다 100배쯤 기분이 더 나쁜 이유가 뭘까.  그 스멀스멀한 불쾌함은 뭘까. 은연중에 게이=성추행자라는 도식이 머리 속에 있음을 자각할 때도 있다. 이 정도면 내가 완전히 호모포비아처럼 느껴진다.


이성, 감성, 교육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다. 게시판에 재밌는 글을 쓰던 친구가 뇌성마비라도 뭐하나 달라지는 건 없다. 대다수의 게이는 홍석천씨처럼 당당하고 패션감각까지 갖춘 나이스 가이들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들을 만나면 나는 당황할 것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도 쌓였으니, 티는 안나게 감추겠지만, 머리 속에는 오만가지 생각들과 한가지 답이 있을 것이다. 이 자리를 피해야 겠다!


어떻게 하면 그 무식한 행동을 벗어날 수 있는지 나는 답을 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던 고아원 아이들. 성당에서도 곧잘 마주치던 그 아이들을 모른 채 하던 것이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누가 나에게 가르쳐 줬어야 했다. 부모님이라도 좋았고, 학교 선생님이면 더 좋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모르면 알려 줘야지. 낯선 것에 대한 차별을 깨려면, 그 기본적인 프로토콜을 어디선가 배워야 했다. 그런 것들이 나도 모르게 내면화되어 나이가 들 수록 몸에 배인 것이다. 고아원 탐방 수업도 한번 가지고, 중학생쯤 되면 재활시설 자원봉사도 하고, 성교육도 제대로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머리가 굳은 뒤 책에서 읽은 지식으로 마음이 열리지 않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차별과 법

차별을 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법이 있든 없든, 나의 행동거지는 똑같았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했던 행동이 위법이었던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는 제대로 배워야 한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게시판, 블로그에서는 나도 얼마든지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글을 쓸 수가 있다. 만나면 한마디도 못할 거라는 걸 알기에, 위선 카르마를 쌓느니 모르는 채 할 뿐. 게시판에서 공자님같은 상식을 볼 땐 그런 생각이 든다. 어디서 교육을 받았기에 그렇게 당당할까. 길거리에서 뇌성마비 환자를 피하는 그런 사람들과는 정말 많이 다른 사람들일까.


이 세상에 박힌 이 찝찝한 위선도 싫고, 내 머리와 손가락의 의견 불일치도 싫다. 무엇보다 싫은 건 그걸 전쟁으로 풀어가려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축제가 필요하다. 광화문에 무지개 깃발도 날리고, 배에 왕자 박힌 멋진 아저씨들이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언 땅을 녹였으면 좋겠다.

by 분도 | 2010/01/05 16:19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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