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벅지 그리고 김여사.

언론에서 꿀벅지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을 보고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김여사. 언론에서 과연 쓸까 생각했지만, 뉴스 검색해보라.
김여사만 쳐서는 김윤옥 여사가 검색되니 김여사 & 운전으로 검색하는 편이 빠르겠다.

"집에서 솥뚜껑이나 운전하지 왜 도로에 나오고 그래."라는 말의 연혁은 꽤 오래 되었다. 
그 문장의 최근 버전이다.

최소한 30년은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운전한지가 그 즈음 되었으니.
그런 말을 옆에서 듣고 자랐다고 할까.

어머니의 성씨는 바로 김씨. 김여사다.
30년 넘어 접촉사고 한번 없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10년전 운전을 몇 년 안하시다, 새로 보험에 가입했을 때 그 희소성을 알았다.
보험회사에서 깜짝 놀라며 확인 전화를 하더라.
그 영업소에서는 20년 무사고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여자들은 공간 지각력이 떨어진다는 그런 보도도 본 것 같은데 신빙성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뇌과학이라는게 미지의 영역에서 걸음마를 하고 있는 분야 아니겠나. 
어머니의 주차실력은 칼이다. 어쩌다 옆에 태운 남자분들이 깜짝 놀라는 것은 다반사였다.
주차장에서 헤매고 있는 남자 운전자들 대신해 주차해주는 것도 몇 번 봤으니.
남들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주차장 사각지역에 희한하게 주차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이다.

장거리 여행갈 때 마다, 부모님은 교대로 운전을 했고 그 때 마다 아버지는 툴툴거렸다.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을 때 마다 좀 더 매끄럽지 못한 승차감이 들었던 것을,
나도 형도 어머니도 그리고 아버지도 느꼈으니까.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 김여사는 지금까지 겪어본 운전자중 탑클래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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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운전자들이 서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전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적다. 면허증이 장롱과 도로 사이에서 오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술자리 농담으로 여자 운전자를 "김여사"라는 단어로 비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로선 감정적으로 기분 나쁘고, 지성도 짧아보이고, 심지어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지만 겉으로는 티를 안낸다.
다만 이게 신문에 나오면 곤란하다. 정말 곤란하다.

性차별과 姓차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단어다.
둘 중 하나만 하더라도 공공에서 쓰기 어려울 텐데, 두가지를 한번에 한다.

거기에, 김씨가 흔하긴 하지만 관용적으로 바로 꺼내 씀직한 성씨도 아니다.
장삼이사, 서울에서 박서방찾기 등... 장씨, 이씨, 박씨 등 전통적으로 꺼내 쓰던 성씨는 내버려두고 하필이면 김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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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로 했다. 
사례가 너무나 빈번하니, 신경 쓰다간 속좁은 놈 되어버린다.
기자로서도 익숙한 관용어니 포기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

다만 타협을 했으면 좋겠다.
각자의 어머니 성씨를 붙이는 거다.

박여사, 최여사, 이여사.

어차피 내가 남자니, 性차별은 신경끄기 편하다. 허나 姓차별을 하면 왠지 어머니가 연결되니 타협하기 어렵다.
몇몇 20대의 기자들이 태어나기 전 부터 칼운전을 해오던 김여사가 있으니 그 쯤은 받아들였으면 한다.

by 분도 | 2009/09/24 04:32 | 트랙백 | 덧글(3)

새 런닝화를 샀다.

3달반, 새 런닝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신어보니 꽤 완성도 있는 제품이었다.

by 분도 | 2009/08/18 00:51 | 트랙백 | 덧글(0)

광화문 연가. 대통령을 보내고.

휴가를 내어 광화문으로 나섰어.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간다는게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갈 수 밖에 없었어. 돌아오는 길이 걱정되었지. 행여 마음속 구멍이 더 크게 뚫리지나 않을까하는 마음이었어.

광화문 너머에서는 영결식이 이루어지고, 전광판에는 화면이 나왔어. 그렇지만, 스피커는 없었다. 어디선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비현실적인 울림 빼고는. 

 
저 시각 오전 11시 54분. 전경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어. 그 넓은 광화문 거리는, 지하 광장 공사로 뜯어놓고, 그나마 진입하지 못하도록 폴리스 라인을 쳐두고는, 전경들이 인도로 밀려와.


시민들과 말다툼이 붙었어. '남의 장례식에서 무슨 행패냐' 저 너른 도로를 놔두고 인도로 병력이동한다는게 이해가 안되었어. 저 애들은 벌써 제대로 장비를 갖췄어. 뭔가 몰라도 한참을 모른다고 봐. 우리들이 지금 싸우러 왔는지, 슬퍼하러 왔는지.


이런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 속에 전경들은 대로로 이동하게 되었어.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  너무 전위적이야. 차는 인도로 가고, 사람은 차도로 걷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이 주변은 연령층이 꽤 높았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눈에 많이 띄였어. 시민의 차분함과 전경의 대오가 이질적이었다.




사진에는 잘 안잡혔지만, 광화문 입구앞에는 전경 버스들로 담을 세워 뒀어.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조문객들이 광화문 안으로 뛰쳐들지나 않을까 겁먹었던 것 아닐까.



영결식중에도 그 밖에는 명박산성이 쳐져있던 것이지. .



버스들의 끝을 따라가다보면 아까 배치된 전경들의 모습이 나와. 난 그런 생각을 했어. 저 시꺼먼 복장위에 조그마한 리본이라도 하나 다는 것이 방패보다 효과가 좋았을 거라고 말이야.



버스가 이동해서 입구를 열었어. 이제... 영결식이 끝났나봐.


주위가 숙연해졌어. 지금이 어떤  순간이라는 걸 모두 떠올린거야. 구름이 나타나 땡볕을 가렸어.



콘보이 경찰차량들이 나오고...



우리 대통령의 영정이 보였다.



영구차가 소리없이 나타났어.
사랑합니다. 크게 외쳤다. 다시 한번 사랑합니다.
누군가의 경험담에서처럼, 까맣게 썬팅된 창문을 내리고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나왔어. 지금이 현실이구나. 조문할 때도 난 현실감이 안들더라. 말도 안되잖아. 퇴임한지 1년 밖에 안 지난 대통령이... 그것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핍박받다 죽는 그런 현실은 말도 안되는거 아닌가?  한국사에서 그런 역사를 찾으려면 매우 매우 오래 전으로 내려가야해. 일단 꼬장꼬장한 유학자들이 깔린 조선시대는 건너서 생각해야 할거야.

그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도 영구차가 주는 그 압박감에 현실이 되어버려.

 


행렬을 따라 내려오니, 어느새 사람들이 여기저기 가득 차 있어.



내가 존경하는 우리 문변의 얼굴. 언제 다시 사람좋은 너털 웃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뒤이어 오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모습들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 며칠 새 10년은 늙어버린 그 슬픔의 모습들. 여태까지의 사진도, 느린 행진중 어쩌다 한 장씩 찍은 거라는 걸 알아주시길.


이 때 쯤 폴리스라인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나도 모르는 새 그들과 같이 광화문 거리를 내디뎠어. 언제 다시 이 길을 걷게 될까. 수 년이 걸릴까. 수 십 년이 걸릴까.

핍박받다 돌아가신 이순신 장군과, 멀리 보이는 핍박 전문 정론지 사이로 영구 행렬이 지나갔어.


걷다보니, 이제야 내가 얼마만한 인파들 사이에 있는지 슬슬 감이 잡혔다. 아침에 광화문 앞에서 기다릴 때만 해도, 평일이니 많은 분들이 못나오지 않을까하는 멍청한 예측을 했었어.



이 많은 인파가 그 흔한 구호한번 외치지 않았다. 이를테면 독재타도 같은 것. 오늘 간간이 터진 외침은...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사람들은 작정을 했나봐. 대통령을 아무 걱정없이 보내주고 싶어서... 정말 통합 속에 품위있는 국민장이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나봐. 그곳에는 단지 슬픔만 있었어.



아 무장한 전경도 있었구나. 쟤들 왜 있는 건지 모르겠어. 차가 막혀서 집에 못가고 있는 거 아니니? 니들이 있을 시간과 장소가 아니란다. 혹시나, 자잘한 도발로 '폭력 군중이 장례식을 망치다.' 이런 헤드라인 뽑아내고 싶었던 건 아니겠지? 음모론 권하는 사회다.


저 군중들 사이에서, 가끔씩 흘러나오는 통곡소리들, 그리고 벌건 눈들을 볼 수 있었다.




한 블록을 내려왔어. 저 만장너머 대통령이 누워있다.



저 멀리 보이는 청와대. 어느새 거대 인파의 중앙에 서 있다. 오늘 김제동씨의 사회는 좋았다. 그도 오늘 나처럼 위로받았기를 바란다.



노제는 시작되었고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많은 인파들 사이로 수 많은 사람이 지나갔지만, 물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장애인의 휠체어가 한 대 지나갔는데, 비켜주세요 한마디 할 때마다 홍해처럼 수 미터가 열리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오늘 본 또 다른 낯선 모습이다.


오늘 정말 많은 흐느낌을 들었다. 정말 많은 이들의 '사랑합니다' 외침을 들었다.



초혼제의 한지조각이 하늘 가득 퍼져갔다.



한 여름에 내리는 눈.
그래.
노무현은 한 여름에 내리는 눈 같은 존재였다.
모두가 폭염에 시달릴 때, 우리 마음 속을 순식간에 적셔버린 사람이다.

 


언제나  기대가 컸다.
그라면 모든 것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게 아니다.
어떤 누구도 헤쳐 나갈 수 없는 길을 그만은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노신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길이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니다보니 길이 되었다고.

 


노무현이 걸어나가서 생긴 그 오솔길을 이제 우리가 걸을 것이다..
그래서 상식이 병목현상을 일으키지 않는 제대로 된 길들을 만들 것이다.

 


노란 천이 펼쳐진다.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by 분도 | 2009/05/30 00:13 | 트랙백 | 덧글(3)

음모론에 빠질 땐 빠지더라도...

 난 후속 기사가 터질 때 마다 미치겠다.


우리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위에서 몸을 날릴 때...


그에게 최소 세 번의 충돌이 있었던 것이다.


"고추밭에서 일하던 중 '툭' '탁' '쿵'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60이 넘은 그의 몸이,

수직 낙하가 아니라, 70도 바위 위로 충돌하며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던 것이다.


그 거친 바위 위에 부딪쳐 그 소리들이 울렸던 것이다.


6시 10분에서 20분 사이에 몸을 날려...


9시 40분 절명하시기까지...


자그마치 3시간 30분...


제발 고통을 느끼지 않으셨기를.


코마 상태에서 고통 따위는 없으셨기를.

마음을 짖누르는 그 고통의 무게에 음모론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는 밤이다.

by 분도 | 2009/05/28 00:51 | 트랙백 | 덧글(0)

서울역 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퇴근길 발길이 향했습니다. 원래는 시청앞 시민 추모제를 가려고 나선 길이었는데, 퇴근 무렵 뉴스를 보니 여전히 빗장을 걸었더군요. 자연스레 발길은 서울역을 향했습니다. 사당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던 참이었는데 지하철이 10여분을 서 있습니다. 흐릿하게 들리는 방송을 귀담아 들어보니, 총신대역에서 사망사고가 있은 모양입니다.

"사망사고로 인하여 정차중이오니 급하신 승객께서는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Record_2009_05_27_20_29_36.mp3


아, 두가지에 놀랐습니다. 하나는 직설적으로 '사망'이라는 단어를 골라낸 무심한 방송과, 그 무심함에도 표정변화없는 승객들에게 놀랐습니다. 이제 일상이 되었나 봅니다. (돌아와 뉴스를 확인하니 다행히 추락자는 사망하지 않았더군요. )

그렇게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원래 카메라를 꺼내들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한동안 줄을 서다 보니 오늘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줄 서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새치기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줄 설 곳을 피해다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줄 끝을 찾으러 가는 길이 아득합니다. 줄을 선 후 뒤를 돌아보니 3~4분이 흐른 것 같은데 제 뒤에 수 백 명이 서 있습니다. 저처럼 회사일 마치고 나선 듯한 직장인 분위기입니다.

 


상념에 빠졌습니다. 노짱이 탄핵당했을 때 모인 사람들처럼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같이 서 있는데 표정은 그 때와 다릅니다. 그 탄핵당시 아무도 우리가 질 거라고는 생각 안했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2002 대선. 정말 당연히 이긴다고 생각했었지요. 노무현과 함께할 때는 그렇게 든든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앞사람 뒤통수가 아닌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위는 침묵합니다.
이렇게 긴 청중이 한참 기다리고 있으면 노무현이 보이던 행동이 있었어요. 조금은 미안한 표정으로, 조금은 벅찬 표정으로 싱거운 농담 한마디 던지셨을 텐데. 그러면 항상 우리는 하하하 웃을 수 밖에 없었는데.


 

정부가 만든 역사박물관 분향소가 아닌 시민 분향소지만 알차게 잘 꾸몄습니다. 10시 정각 사람들은 줄의 끝은 여전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국화꽃을 영전에 바칠 때가 되니 머리속에 캄캄해집니다.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거짓말 같은 순간입니다. 묵념을 하셔도 좋고, 큰절을 올려도 좋다는 안내가 있자, 모두가 큰절을 합니다.

 

상주를 마주하는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문짝. 얼마 전 무릎팍도사에서 봤던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그 문성근씨가 아닙니다. 며칠 새 초로의 노인처럼 힘들어 보였습니다. 여러 말들이 목구멍에 얼어붙었습니다. 역시 상주로 있던 이창동 전 장관. 그 시절에는 문화관광부가 지금과 같은 역할을 하게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강금실 전 장관도 많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집에 오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지하철에서 붙인 찌라시를 바라보니 누가 낙서를 해놨습니다.
"최선의 길은 과도하게 높은 임금을 삭감하는 것입니다! 근무시간 연장을 통한 인원감축과 임금삭감 대환영!"

 비꼬는 소리일까,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일까 갸웃거리며 집으로 왔습니다.

다녀오니,
마음이 더 아픕니다...

줄 서 있는 동안, 봉하행 KTX를 타고 싶다는 생각 가득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by 분도 | 2009/05/28 00:0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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