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라 생각하는 머리와 호모포비아를 적는 손.

페미니스트의 강연 속 폭력.

언젠가 유명한 페미니스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강연도 찾아들을 만큼, 나 나름대로는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건전한 남자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 강연에는 흥미로운 내용도 많았다. 한국어에도 엄연히 남성어와 여성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각하지 못하고 남성어를 쓸 때 그게 또 하나의 폭력이 된다는 그런 내용 참신했다. 그런데 점점 불편해오는 것이다. 감성의 속도가 이성을 못따라와 잔상을 일으킨다. 집에 와 곰곰히 생각해봤다. 불편한 그 덩어리들의 정체는 뭘까. 


내 결론은 그거다. 폭력이라는 단어. 정치적으로 올바르려 애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이런 말도 하나의 폭력이 됩니다라고 할 때 그 폭력. 나도 모르게 생활속에 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말들이 불편했다. 어떤 말들이 있을까. 얼마전 시끌했던 호모라는 말도 그럴 수 있겠다. 차별어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겐 폭력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불편한 말이다. 그 페미니스트의 강연에 의하면 내가 쓰는 말의 반은 폭력이다. 폭력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온다. 모든 말들이 편할 필요는 없겠지. 불편한 진실이 편한 진실보다 더 많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지적보다는 긍정적인 칭찬이 세상을 바꾸기에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책을 읽다 머리에 콕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60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던 전공투는 정말로 폭력을 행사했다. 안전모와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죽창을 들고. 그런데 이네들은 죽창을 게바봉이라 부른다. 섹트사이의 폭력 난투는 우치게바라 부른다. 게바는 독일어 Gewalt에서 나왔다. 재미있다. 기나긴 죽창을 독일어로 명명하다니. 고등학교 교사들이 무시무시한 하키채에다 사랑봉같은 애칭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폭력과 그 폭력의 목적 사이에는 당연히 깊은 단차가 있다. 그 골을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그런 징검다리를 놓지 않았을까. 그런 것들이 없었으면, 극우 미시마 유키오가 동경대 전공투가 점거한 야스다 강당에 단독으로 찾아와 강연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조갑제가 민주노총 파업현장에 나타나 강연하는 꼴이지 않은가.


폭력이라는 날 것을 살짝만 익혀 들고 왔으면, 나는 헷갈리지 않고 재미있게 강연을 들었을 것이다. 폭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강사와 나 사이는 홍해처럼 갈라졌다. 


날 선 정의들

여러 블로그들을 보면, 정의는 확실하다. 여러 모세들이 갈라놓은 홍해가 너무나 많다. 호모라고 말하는 사람과 호모포비아라고 말하는 사람 두 부류만 세상에 존재한다. 한가지 부류가 더 있다. 머리 속 깊은 곳에선 호모라고 말하고, 손가락으로는 호모포비아라고 말하는 나 같은 사람들. 2010년 한국인들이 애매하게 서 있는 지점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위선인 것 같기도 하고, 스노비즘인 것 같기도 하고. 알면서도 못끊는 담배같은 지겨운 습관 같기도 하다. 


뇌성마비 친구와 수영장에서 만난 게이

동호회 모임에 나갔는데, 한 녀석이 중증 뇌성마비다. 모르고 있던 사실은 아니었다만, TV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내가 뇌성마비 장애인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대할지 머리 속이 막막하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고,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어떻게 대해야 하나. 혹여 내가 동정심이나, 귀찮음을 내비치는 건 아닌지 몸이 사려진다. 내 상식하고 내 행동하고 어긋나기 시작한다. 재활원에서 자원봉사한 친구가 만들어 내는 능숙한 분위기가 경이롭다. 돌아오는 길 내내 내가 위선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새벽 수영을 열심히 다니고 있을 때다. 재잘거리며 친해보려던 또래 아저씨. 잠도 덜깨고 물도 먹는데 왜이리 말을 거는지 불편하다. 희한하게 강습 줄을 쓸 때 마다 내 뒤에 서고, 이상하게 샤워할 때 마다 옆에 붙어 샤워를 한다. 샤워실에서 이상하게 내 쪽 샤워기로 한걸음 붙곤 하던 그 아저씨. 어느 날 몸이 닿는 순간, 나는 비누도 덜 씻고, 새벽 추위에 물도 안마른 채로 쌩 도망나왔다. 이후로 비누 주워 달라는 농담이 나올 때 마다 등골이 서늘하다. 며칠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징글징글한 것이었다. 다시 수영장에게 가기까지 2년이 걸렸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런 기분 나쁜 경험담이 툭 튀어 나올 때가 있는데, 학교 선생부터 군대 고참, 버스 옆자리 아저씨까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호모포비아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회식 자리에서 집에 바래다 달라던 여직원이 오바이트한 입으로 입술을 덮쳤던 황망함보다 100배쯤 기분이 더 나쁜 이유가 뭘까.  그 스멀스멀한 불쾌함은 뭘까. 은연중에 게이=성추행자라는 도식이 머리 속에 있음을 자각할 때도 있다. 이 정도면 내가 완전히 호모포비아처럼 느껴진다.


이성, 감성, 교육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다. 게시판에 재밌는 글을 쓰던 친구가 뇌성마비라도 뭐하나 달라지는 건 없다. 대다수의 게이는 홍석천씨처럼 당당하고 패션감각까지 갖춘 나이스 가이들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들을 만나면 나는 당황할 것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도 쌓였으니, 티는 안나게 감추겠지만, 머리 속에는 오만가지 생각들과 한가지 답이 있을 것이다. 이 자리를 피해야 겠다!


어떻게 하면 그 무식한 행동을 벗어날 수 있는지 나는 답을 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던 고아원 아이들. 성당에서도 곧잘 마주치던 그 아이들을 모른 채 하던 것이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누가 나에게 가르쳐 줬어야 했다. 부모님이라도 좋았고, 학교 선생님이면 더 좋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모르면 알려 줘야지. 낯선 것에 대한 차별을 깨려면, 그 기본적인 프로토콜을 어디선가 배워야 했다. 그런 것들이 나도 모르게 내면화되어 나이가 들 수록 몸에 배인 것이다. 고아원 탐방 수업도 한번 가지고, 중학생쯤 되면 재활시설 자원봉사도 하고, 성교육도 제대로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머리가 굳은 뒤 책에서 읽은 지식으로 마음이 열리지 않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차별과 법

차별을 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법이 있든 없든, 나의 행동거지는 똑같았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했던 행동이 위법이었던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는 제대로 배워야 한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게시판, 블로그에서는 나도 얼마든지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글을 쓸 수가 있다. 만나면 한마디도 못할 거라는 걸 알기에, 위선 카르마를 쌓느니 모르는 채 할 뿐. 게시판에서 공자님같은 상식을 볼 땐 그런 생각이 든다. 어디서 교육을 받았기에 그렇게 당당할까. 길거리에서 뇌성마비 환자를 피하는 그런 사람들과는 정말 많이 다른 사람들일까.


이 세상에 박힌 이 찝찝한 위선도 싫고, 내 머리와 손가락의 의견 불일치도 싫다. 무엇보다 싫은 건 그걸 전쟁으로 풀어가려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축제가 필요하다. 광화문에 무지개 깃발도 날리고, 배에 왕자 박힌 멋진 아저씨들이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언 땅을 녹였으면 좋겠다.

by 분도 | 2010/01/05 16:19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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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 at 2010/01/12 12:30
우연히 보고 글 남깁니다.
많은 부분에 공감을 느낍니다. 머리와 행동이 다른 것 말입니다.
저도 그런 상황에 처하면 행동을 머리에 일치하도록 의도적으로 조절하면서 '위선자'라는 자괴감에 빠졌었는데요, 최근에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뭐든 저절로 되는게 없으니까, 그냥 '노력'하는 거라고요.
뭐 은연중에 귀찮음을 느끼면서도 어딘가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면,
그건 위선적인게 아니라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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